貫鄕地 安定 沿革
우리가 관향(貫鄕)으로 삼고 있는 안정(安定)은 신라(新羅) 때부터 매우 중요시 여긴 곳이다.
즉, 오늘날 광역시(廣域市)에 해당하는 소경(小京)이 서기514년 (新羅 智證王15)에 아시촌소경(阿尸村小京)이라는 이름으로 설치(設置)되었고 삼국(三國) 통일 후 서기685년 (神文王 5)까지는 아시혜현(阿尸兮縣)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757년 (新羅 景德王16)에 아시혜현을 안현현(安賢縣)으로 고치고 이웃한 아화옥현(阿火屋縣)을 비옥현(比屋縣)으로 고쳐 함께 문소군(聞韶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사』 지리지 안정현(安定縣)조에 따르면 서기940년 (高麗 太祖23)에 안현현(安賢縣)을 안정현(安定縣)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안정현(安定縣)의 定은 貞이라고도 쓴다고 하였다.
서기1018년 (顯宗9)의 대대적 군현 개편 때 상주목(尙州牧)의 속읍이 되었다. 속읍(屬邑)은 수령이 파견되지 않는 군현으로 수령이 파견된 주읍(主邑)의 행정 지배를 받는다.
서기1390년 (恭讓王2)에 비로소 안정현(安定縣)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비옥현을 함께 다스렸다.
서기1421년 (朝鮮 世宗3)에는 안정현이 비옥현을 흡수 통합하여 안비현(安比縣)이라 개칭하고, 다시 2년 뒤인 서기1423년에는 비안현(比安縣)으로 고치고,
서기1896년 (高宗 建陽元年)에 경상북도 비안군(比安郡)으로 개칭(改稱)하고,
서기1914년 (倭政5)에 의성군(義城郡)에 합병되어 비안면(比安面)과 안계면(安溪面)으로 되었다.
***比安縣 景德王改阿火屋縣爲比屋 改阿尸兮縣爲安賢 皆爲聞韶郡領縣 高麗顯宗戊午 二縣皆屬尙州任內 改安賢爲安貞 恭讓王二年庚午 始置安貞監務兼任比屋 今上三年辛丑 改爲安比縣監 癸卯 又改爲比安 [세종실록 권제150, 20장 뒤쪽, 지리지 비안현]
***『계곡집(谿谷集)』에 실려 있는 ‘고 봉훈랑 성균관 전적 증 봉직랑 수 홍문관 교리 지제교 겸 경연 시독관 춘추관 기주관 나공 묘갈명(故奉訓郞成均館典籍贈奉直郞守弘文館校理知製敎兼經筵侍讀官春秋館記注官羅公墓碣銘)’에 “나씨(羅氏)는 본래 나주(羅州)에서 나왔는데, 고려 때 천서(天瑞)라는 분이 공을 세워 비안(庇安)의 안정현(安定縣)을 식읍(食邑)으로 받았기 때문에 자손들이 마침내 이곳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縣)의 사람들이 시조공(始祖公)이 거처(居處)하셨던 좌우(左右) 마을을 정승동(政丞洞)이라 하는데 이는 시조공(始祖公)의 아우 원서(元瑞)와 문서(文瑞)가 모두 정승(政丞)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