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한글편지


발굴장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금고동 발굴시기 : 서기 2011년 5월 2일 소 장 처 : 대전역사박물관 기 증 자 : 안정나씨대종회 보낸 할아버지 : 안정나씨 7세 참봉공 휘 신걸 받은 할머니 : 참봉공의 부인 신창맹씨 (회덕 온양댁) 작성시기 : 서기 1480년에서 1490년으로 추정










[번역문] 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將帥)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군관 자리에 자망(自望 : 자기를 추천)한 후면 내 마음대로 말지 못하는 것일세.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구태여 가면 병조(兵曹)에서 회덕골로 문서를 발송하여 조회하여(照會) 잡아다가 귀향 보내게 될까 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아니 가려 하다가 못하여 영안도(永安道, 咸鏡道) 경성(鏡城) 군관이 되어 가네. 내 고도(古刀. =낡은 칼)와 겹철릭을 보내소. 거기는 가면 가는 흰 베와 명주가 흔하고 무명이 아주 귀하니 관원이 다 무명옷을 입는다고 하네. 무명 겹철릭과 무명 단철릭(=홑철릭)을 입을까 하네. 반드시 많이 하여 설을 쇠지 말고 경성으로 단단히 하여 들여보내소. 옷을 못 미처 지을 것 같거든 가는 무명을 많이 보내소. 두 녘 끝에 토시를 둘러 보내소. 무명옷이 있으면 거기인들 옷이야 못하여 입을까? 민망하여 하네. 반드시 하여 보내소. 길이 한 달 길이라 하네. 양식을 브경이(인명)에게 넉넉히 하여 주소. 모자라지 아니하게 주소. 전지(田地, =논밭)의 온갖 세납이란 형님께 내어 주소 말씀하여 세납에 대해 대답하소. 공세(貢稅, =공물(貢物)는 박충의 댁에 가서 미리 말하여 두었다가 공세를 바꾸어 두소. 쌀 찧어다가 두소. 또 골에서 오는 제역(除役,=면역(免役)) 걷어 모아 채접하여 주거늘 완완히(緩緩) 가을에 덩시리(인명)에게 자세히 차려서 받아 제역을 치라 하소. 또 녹송이야 슬기로우니 녹송이에게 물어보아 저라고 대답하려 하거든 제역을 녹송이에게 맡아서 치라 하소. 녹송이가 저라고 대답하거든 골에 가서 곡식담당 관리에게 많이 달라 하여 하소연하여 청하라 하소. 또 전지(田地, =논밭) 다 소작(小作) 주고 농사짓지 마소. 또 내 다른 철릭 보내소. 안에나 입게. 또 봇논(洑) 모래 든 데에 가래질하여 소작 주고 절대로 종의 말 듣고 농사짓지 마소. 또 내 헌 간 생사로 짠 비단 철릭을 기새(인명)에게 주소. 기새 옷을 복경(인명)이 입혀 가네. 또 가래질할 때 기새 보고 도우라 하소. 논 가래질을 다하고 순원이(인명) 놓아 버리소. 부리지 마소. 구디(인명) 데려다 이르소. 영동에 가서 아뢰어 우리 논 있는 곁에서 경성 군관이 내월 열흘께 들어오니 거기 가서 알아 함께 내 옷 가져 들어오라 하소. 또 반드시 영동에 가서 물어 그 군관과 함께 들어오라 하소. 그 군관의 이름이 이현종이라 하는 바이니 또 내 삼베 철릭이랑 모시 철릭이라 성한 것으로 가리어 다 보내소. 또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가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고, 울고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또 다랑이 순마니가 하는 논에 씨 열여섯 말, 이필손의 논에 씨 일곱 말, 손장명의 논에 씨 다섯 말, 소관이가 하는 논에 씨 다섯 말, 구디지에 하던 논에 씨 다섯 말, 이문지에 논에 씨 여덟 말, 종도리가 하는 논에 씨 여덟 말, 진 구레논에 씨 열 말, 또 두말 구레 밭에 피 씨 너 말, 뭇구레에 피 씨 너 말, 삼밭에 피 씨 한 말, 아래 밭에 피 씨 한 말 닷 되, □ 하는 밭에 피 씨 서 말, 어성개 밑밭에 피 씨 서 말, 허오동이 소작 하던 봇논에 씨 서 말. [봉투] 회덕 온양댁 가인(家人)께 올림 편지 벌써 자세히 즉시 다 받았소. 빨리 보내소. 입사(立四) 수결 1) 군관 : 장수 휘하에서 여러 군사적 직임을 수행하던 장교급의 무관. 조선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장수 휘하에서 여러 군사적 직무를 수행하던 무관을 칭하였다. 신분상 일반 군사와 다를 바 없었다. 2) 영안도는 성종 3권, 1년(1470)에 영안도로 개칭하였으므로 이 편지는 1470년 이후에 쓰여 진 것은 분명함. 3)'立四’는 발신인의 호를 나타내는데, 나신걸의 호일 가능성이 있다. 4)수결은 양쪽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아마도 편지를 말아서 두 부분이 접합되는 부분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